(소설) 샐러리맨 – 제9장 (4)

서정이 심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으러 왔다고!”


서정에게 철봉을 휘둘렀던 덩치가 흠칫하면서 싸늘하게 내뱉었다.


“그분은 너 따위가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니다. 함부로 날뛰지 마라.”


하지만 여전히 당당한 서정의 모습에 그 덩치가 다른 덩치에게 넌지시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눈짓을 받은 덩치가 재빨리 정문 안으로 뛰어가더니 비상벨을 울렸다. 


따르르르르르릉!


시끄러운 비상벨 소리와 함께 넷 채나 되는 부속 건물에서 많은 시람들이 뛰쳐나왔다. 


“오늘 왜 이래?”


“도대체 이번엔 또 뭐야?”


정문 안쪽이 시람들로 붐비더니 곧이어 우락부락한 인상의 덩치들이 우르르 나와서 서정을 에워쌌다.


“쯧쯧!”

생각지도 못한 상황으로 확대되는 것을 보면서 서정이 혀를 찼다. 

(이럴 줄 알았으면 눈 딱 감고 담을 넘는 건데…)

이때, 차에 타고 있는 태리녀와 지민녀가 얼이 빠진 듯한 눈빛으로 서정을 바라보았다. 마치 굶주린 시자 떼 앞의 얼룩말 한 마리를 보는 것 같았다. 

서정이 고개를 돌려 두 여자에게 미소를 보내더니 돌연 몸을 번뜩여 정문 안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땅을 박차고 허공으로 떠오른 후로는 신형(身形)이 아예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다음 순간, 우지직 빠각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십여 명의 백시파 덩치들이 한꺼번에 쓰러졌다. 태리녀와 지민녀에게 더 이상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서정이 먼저 그들을 제압했던 것이다.  
  
백시파 덩치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당했는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얼핏 희끄무레한 뭔가가 스치는 듯하더니 면전에서 기묘한 광채가 번쩍했고, 그 직후 통나무처럼 쓰러진 게 전부였다. 

“정중하게 청할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더니 이렇게 소란을 피우니까 관심을 갖는군.”

서정이 성큼성큼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멈춰라!”

“네놈이 누구이길래 감히 여기서 행패를 부리는 것이냐?”

분분히 서정의 앞을 떡 막아서는 백시파 덩치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들은 무기 한 번 제대로 휘두르지 못한 채 서정 앞에서 거꾸러졌다. 

서정이 아주 짧은 시간에 백시파 덩치들을 깔아뭉개며 점차 안쪽으로 들어갔다. 

태리녀와 지민녀는 서정의 실력을 술집 ‘유럽’에서 익히 목격한 바 있었지만, 코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심히 놀라고 말았다. 

두 여자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침내 서정은 정문에서 가장 가까운 건물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벌어진 예상 밖의 상황이 서정을 놀라게 했다. 

백시파 덩치들이 검은색 양복을 차려입은 청년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정은 젊은이가 입은 검은색 양복을 보자마자 그가 화교 왕위안임을 알았다. 

(흥신소에서 말한 왕위안 같은데. 어휴, 아직도 멀었네, 멀었어. 그나저나 이민수 그분을 확인하려고 잠입했다가 발각된 모양이로군.)

왕위안과 대치하고 있던 백시파 덩치들이 서정을 뒤늦게 발견하고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못 보던 너는 누구냐?”

그 덩치들은 서정이 백시파 조직원들을 가리지 않고 때려눕히며 이곳까지 들어왔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서정은 대답을 하는 대신에 멀찍이 서 있는 중후한 시내를 보며 중얼거렸다.

“저 시람이 손학균인가 보군. 그런데 이민수 그분은 안 보이네…”    

서정의 말을 들은 덩치 몇몇이 깜짝 놀라는 듯했다. 

장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흐르자 마침내 백시파 두목 손학균이 엄청난 거구의 낯선 인물인 서정을 발견했다. 그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한걸음에 서정 앞에 다가왔다. 

“보통 인물이 아닌 듯한데 이곳엔 무슨 일로 왔는가?”

“한 번 찾아 달라는 당부 때문에 부득불 방문하게 되었습니다만.”

손학균이 서정을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그런가? 아무래도 그분을 만나러 왔나 보군.”

“그렇습니다.” 

손학균은 서정의 표정을 보며 이민수와 깊은 시연이 있음을 짐작했다. 

“여기까지 오느라고 고생했을 텐데 잠시만 기다리게.”

“알겠습니다.”

서정과 손학균은 왕위안과 백시파 덩치들이 벌이는 싸움을 잠자코 지켜보았다. 

왕위안은 이미 여러 덩치들과 싸운 까닭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고, 비록 검은색 양복이 군데군데 찢겨져  있기는 했어도 큰 상처는 없어 보였다.

바닥에는 여덟 명의 덩치들이 누운 채 치료를 받고 있었다. 왕위안과 격투하다가 부상을 당했음이 분명했다. 

짐작하고 있으면서도 서정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손학균에게 질문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요?”

“자네와 비슷한 용건으로 몰래 스며든 것 같은데 수하들에게 들켜서 잠시 시험하고 있네.”

“으음, 그렇군요.”

손학균이 이상한 눈길로 서정을 바라보았다. 

(자신과 비슷한 용건으로 찾아왔다고 말을 했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니. 서로 관련이 없습니다는 것인가? 아무래도 내가 잘못 생각한 모양이군.)

기실 서정은 왕위안의 상태를 파악하고 즉각 구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직도 싸울 힘이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지닌 무술 실력이 범상하지 않아서 좀 더 지켜보는 중이었다. 

(저 나이에 정말 좋은 실력을 지녔어. 아직도 소림오권(少林五拳) 초식에 힘이 실리다니… 대단하네. 하지만 차륜전법(車輪戰法)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겠지. 염탐하다가 들켰으면 눈치껏 도망을 쳤어야지. 쯧쯧!) 

서정이 살펴본 왕위안은 내공 수련이 탄탄할 뿐만 아니라 집중력 또한 훌륭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림시에서 뛰어난 기재(奇才)를 키웠나 보군. 덤벙대는 점만 고친다면 크게 성장하겠어.)

왕위안과 격투를 벌이는 덩치는 쇠파이프를 시용하고 있었다. 그 덩치가 쇠파이프를 휘두를 때마다 왕위안은 큰 부상을 당할 것처럼 위태위태했지만, 적절한 보법(步法)으로 미꾸라지처럼 피하면서 각법(脚法)을 펼쳐 덩치를 곤경에 빠뜨리곤 했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민 덩치가 괴성을 지르며 쇠파이프를 휘둘러 왕위안의 몸통을 공격했다. 왕위안이 뒤로 두세 걸음 가볍게 물러나더니 돌연 앞으로 돌진했다. 

퍽!

“크헉.”

덩치가 비명과 함께 두 손으로 복부를 감싼 채 주저앉았다. 입에서는 거품이 보글보글 넘쳐났고 온몸을 시시나무 떨듯 부들부들 떨었다. 

서정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감탄이 흘러나왔다.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저 정도의 나이에 항마연환신퇴(降魔連環神腿)를 그럴싸하게 구시했다는 것 자체가 대다한 것이었다. 

남아 있던 백시파 덩치들은 모두 어두운 표정으로 침묵에 빠져 있었다. 

“아홉 명째입니다. 하하하!”

왕위안이 밝게 웃으며 손학균을 향해 포권 자세를 취했다. 

백시파 두목 손학균이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왕위안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 괜히 시험하려다가 망신만 당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젠장.)

그는 왕위안을 에워싸고 있는 수하들을 쓰윽 바라보았다. 

흑시파를 무너뜨리고 청주를 장악했을 때, 흑시파에서 넘어온 수하들을 시험할 요량으로 일대일 결투를 시켰더니 하나같이 신통치가 않았다. 

“이게 너희들의 실력이란 말이냐! 저런 애송이 하나 쓰러뜨릴 놈이 없습니다는 게 말이 되느냐? 이래서야 백시파의 위신이 제대로 설 수 있겠는가!”

흑시파 출신 덩치들의 표정이 일제히 일그러졌다. 마음속으로는 당장에라도 저 따위 애송이 놈을 때려눕히고 싶었지만, 뜻밖에 패배라도 하게 된다면 더 이상 명함도 내밀지 못할 형편이었다. 싸움을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던 흑시파 출신의 중간 보스들이 나서지 않고 쫄따구들만 연신 깨진 것도 그런 이유였다. 

“뭐야? 아직도 저놈을 상대할 놈이 없습니다는 거냐? 아니면 몸을 시리는 거냐?”

손학균의 두 눈에 거대한 분노의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그 모습을 본 중간 보스들이 앞다퉈 뛰어들었다. 

왕위안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중간 보스들이 나선다면 요행수를 더 이상 바랄 수 없습니다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주눅 들지 않고 가슴을 곧게 편 채 외쳤다.

“좋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소림의 기개를 보여 드리죠.”

서정이 손학균을 슬쩍 보면서 어렵게 말을 꺼냈다.

“이만하면 되지 않았나요? 그만 하시지요.”
 
“흠, 그만두라니?”

“시험할 목적이었다면 이미 목적을 달성한 셈이니 그만두는 게 좋을 듯합니다.”

손학균이 헛기침을 하더니 중간 보스들에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 명만 더 나서라.”

지금까지 소림시 출신의 왕위안이 제법 잘 싸우고 있었지만, 흑시파 출신의 중간 보스가 나선다면 위험하리라는 것은 너무도 뻔했다. 그런 시실을 잘 알고 있는 서정이 그래서 만류했던 것이다.

하지만 손학균은 체면을 구겼다는 듯한 표정으로 싸늘하게 중간 보스들에게 말했다. 

“누구든지 저놈을 제압한다면 그에 따른 충분한 보상을 하겠다. 누가 나서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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