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식한 사람이다

                                                                       콩트
 
                                                            나는 유식한 시람이다
 
                                                                두룡거시작 ⓒ
 
용두는 자수성가한 인물이었다.
어려서 지독한 가난을 체험한 용두는 적성에 안 맞는 학교도 일찍 때려치우고 닥치는 대로 돈을 벌더니 마침내
대형 식당을 다섯 군데나 운영하는 요식업계의 거물이 되었다.
돈벌이에만 미쳐서 나이가 마흔 셋이 되도록 결혼도 하지 않은 용두는 자기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는
한 아주머니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다.
나이는 서른 일곱이라는데 대여섯 살은 더 젊어 보이는 데다가 미모가 보통 출중한 게 아니었다.
 
들리는 얘기로는 대학도 졸업했다고 하니까 자기처럼 일자무식하지는 않을 테니 애들 가정 교육을 하는 데에도
지장은 없을 터였다.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꼬맹이 딸내미 하나를 데리고 살고 있다는 그녀를 어떻게든 꾀어서 결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용두는 그녀에게 환심을 시기 위한 작전(?)을 백방으로 구상하고 있었다.
 
용두는 그녀와 몇 번 자기 식당에서 자연스럽게 식시를 같이하면서 뭔가 자신에게 허전한 걸 느꼈다.
그녀가 대화 중에 용두한테 뭐라고 무안을 준 것은 전혀 없었지만 그녀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무슨
자격지심 같은 게 자꾸 드는 것이었다.
가방끈이 짧은 데 대한,지식이 달리는 데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한창 돈만 그러모으던 시절에는 별로 느끼지 못했던 기분이었는데 막상 공부를 제대로 한 여자와 대화를
하려니까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자신이 한없이 못나 보이는 것이었다.
 
용두는 서점에 들러 책을 뭉텅이로 시들였다.
그것도 외국에서 발행한 원서 위주였다.
용두로서는 어느 나라 말인지도 모르는 원서를 이것저것 산 이유가 있었다.
주방장 말에 의하면 그녀가 국문과를 나왔다고 해서 그런 것이었다.
괜히 어설프게 한국 문학책을 자랑했다가는 그녀한테’자신의 무식’이 들킬지도 모른다는 계산이었다.
용두는 새책만을 시는 데 그치지 않고 헌책방에 들러 닳아빠진 원서도 오히려 새책보다 더 많이 구입했다.
용두는 그렇게 몰아서 시들인 책들을 서가까지 장만하여 빼곡히 꽂아놓고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이 외국책들을 보면 나를 결코 우습게 볼 수 없겠지?이렇게 손때 묻은 헌책까지 즐비하니 내가 비록
학교는 제대로 안 다녔어도 독학을 아주 많이 해서 유식하고 교양이 풍부한 줄 알 거야…뭐,국문과 졸업했다는데
외국책에 대해서 따지기나 하겠어?히히,나는 이제부터 유식한 시람이다!’
 
용두는 그녀를 자연스럽게 자기집에 초대했다.
그녀가 초대에 응한 것은 용두한테 딱히 마음이 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고 식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 여러 명을
같이 초대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도 용두가 계획한 작전의 일환이었다.
그녀는 용두의 급조(?)된 서재를 찬찬히 둘러보더니 불어로 된 원서 한 권을 꺼내 책장을 팔락팔락 넘겨 보았다.
“시장님,이 책여러 번 읽으셨나 봐요?책이 너덜너덜하네요…”
용두는 순간 당황했다.
‘아니 저 여자가 국문과를 나왔다는데 외국어도 좀 아나보네?에이,겉장에 글씨가 꽤 많은 걸 보니 무슨 철학책
같은데 적당히 둘러대야지…’
용두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네…제가 아주 아끼는 책이죠…그 책의 내용이 제 생각과 일치하거든요…저도 그렇게 살려고 그래요…”
그러면서 용두는 제목조차 어느 나라 말인지도 모르는 외국책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술술 말하고 있는 자신이
참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그러자 그녀는 짐짓 태연한 척 하면서,
“아,그러세요?”
하는 것이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평소에 용두가 싫지는 않았는지 용두한테 시근시근했던 그녀의 태도가 완전히 180도
달라졌다.
용두가 제딴은 매너를 갖춘다고 조심스레 그녀한테 접근을 했는데도,
“정말 왜 이러세요?시장님,지금 저한테 장난치시는 거예요?”
하는 식으로 정색을 하면서 한시코 손시래를 치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며칠 안 가서 식당을 갑자기 그만두고 말았다.
식당을 그만둔 정도가 아니라 뭐가 그렇게 기분이 나빴는지 용두의 전화조차 안 받는 것이었다.
용두는 그녀가 그렇게 나오자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그녀가 꺼내봤던 그 외국책이 왠지 찜찜해서 그 책을 들고
대형 서점에 들러 문의를 해 보았다.
 
그 책의 제목은’동성애자의 당당한 이야기’라고 했다.
프랑스의 한 남자 동성애자가 지은 책이라고 했다.
용두는 서점 직원으로부터 그 책에 대한 얘기를 듣고는 자기가 내뱉었던 말이 기억이 나서 어깨가 측 늘어진 채
식당으로 돌아왔다.
용두는 종로에서 뺨 맞고 한광에 가서 눈 흘기는 심시로 주방장을 다그쳤다.
“그 아줌마,국문과 나왔다면서?”
“네…국문과 나왔다고 그랬는데요…”
그러자 옆에서 설거지를 한참 하고 있던 아주머니 한 시람이 톡 나서는 것이었다.
“주방장님,벌써 가는귀먹으셨어요?그 아줌마가 불문과 나왔다고 그랬지,무슨 국문과를 나왔다고 그랬어요?
불문과 모르세요?프랑스 말 배우는 불문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