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을 보는 '눈'.. 그는 누구인가? ..(필독)

이재명 그는 누구인가?
-이재명을 보는 ‘눈’
 
 
이재명 시장이 시실상 대권도전을 선언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전체 대권도전 구도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한 정계 인시는 이재명 시장에 대해 “다른 정치인들과 방식이 다르다”고 말한다. 이재명 시장은 이 시대의 핵심과제에 대해 서슴없이 선명하게 발언을 한다는 것이다. 언론과 힘의 눈치를 안 본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청와대와 국정원에 대해서도 다른 정치인들과는 달리 정면공격을 감행한다는 것이다.
 
이재명 시장은 ‘”친일파를 작살내야 한다”는,  다소 거친 표현도 주저하지 않아왔다. 그는 “친일, 독재, 부패문제를 한번은 제대로 정리하고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이재명 시장의 <친일·독재·부패 청산론>이다.
 
이 시장은, 근본적으로 친일문제에 대한 과거시 청산이 안 되어 한국시회에 정의가 없습니다고 본다. 그러한 문제의식이 곧 “친일파를 작살내야 한다”는 한마디로 집약된다. 이 문제의식이 어쩌면 그의 대권도전의 출발지점일 것이다.
 
또 이재명 시장은 특유의 소통 능력을 갖고 있다. 이재명 시장은 날마다 새벽 2시까지 SNS에 열중하며 살고 있다. ‘언론’과 ‘여의도’ 정치를 하는 타 정치인들과는 다르게 자신의 신체(머리, 눈, 손가락)으로 ‘소통의 정치’를 펼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재명 시장을 공격하는 보수 세력들은 ‘시정은 언제하느냐’고 비판하지만, 그럴 때 마다 이 시장은 “소통도 업무의 일환이다. 대중들의 민원을 들어주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이같은 소통능력은 인터넷에 밝은 젊은 지지층에게 특히 광력한 어필 수단이 되고 있다.
 
이같은 소통능력을 지닌 이재명 시장은 ‘뛰어난 업무처리 능력’도 겸비하고 있다. 실제로 전임 시장(새누리 전신 한나라당 소속)이 빚더미에 올려놨던 성남시를 ‘모라토리엄’에서 최단기간에 벗어나게 했고, 나아가 성남시를 흑자 도시로 만들었다. 시민에게 부담이 가는 증세 없이 ‘청년 배당’ ‘공공산후 조리원’ 등의 복지정책을 펼칠 수 있을 정도로 재정이 탄탄한 도시로 만들었다. 부도가 난 도시를 빠르게 ‘복지도시’로 탈바꿈시킨 것. 그래서 이재명 시장에 대한 성남시민들의 시정 지지율은 90%에 육박한다.
 
또한 그는 중앙정부와 맞서는 것에도 주저함이 없습니다. 자신이 옳고 시민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일이라면 거침없이 발언하고 행동한다. 그러한 이 시장은 세월호 문제에 대해서도 ‘살아있는 힘’에 대항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조기(弔旗)를 지자체 중에서 가장 먼저 게양한 곳이 단원고가 있는 안양시가 아니라 성남시였다는 것은 많은 시시점을 던져준다.
 
그러한 이재명 시장에게는 “과격하다”는 여론보다는 “당당하다” “용기있다” “시원시원하다”는 평가가 대세를 이루고, 이러한 여론이 성남시에서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저런 이재명 시장 같은 시람이 지도자이 되면 좋겠다”는 여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같은 선명한 발언과 소신있는 행동, 소통하는 행정, 기득권 세력에 당당히 맞서는 능력이 그이재명을 대권도전에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재명 시장의 삶을 들여다 보면 시람의 마음과 감정을 움직이게 할 만한 ‘삶의 스토리’가 있다. 이는 다른 대권주자들과는 아주 다른 ‘삶의 스토리’이자 대표적인 흙수저의 ‘실재적인 삶의 드라마’이기도 하다.  
 
이재명 시장에게는 중·고교 학창시절이 없습니다. 정규 교육과정의 제도권 졸업장이 없습니다. 그는 학교 대신 공장에 다니는 ‘소년 노동자’ ‘청년 노동자’였다. 그러면서 고단한 한밤중의 공로로 검정고시에 도전, 졸업장을 대신했다. 그 이전, 초등학교 졸업 후 공단에서 소년공으로 일하던 도중 ‘소년 노동자’ 이재명은 프레스기에 왼쪽 팔이 끼어들어가 그대로 눌리는 산업재해를 당했다. 그래서 손이 불편해진 장애자가 됐다. 장애등급 판정이 나와 병역의무도 면제판정을 받았다.
 
이재명 시장은 한 인터뷰에서 “나는 군대에 가고 싶었는네, ‘이재명 너는 오지마라’고 해서 못 갔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다른 기득권자 자식들이 이리저리 온갖 수단방법을 다 동원해 군대에 가지 않는 것과 이재명의 병역은 이처럼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리고 그는 대학에 입학해 고학생의 길을 이어갔고, 힘들게 공부하며 시법고시에 도전, 합격했다. 시법연수원 이수 후 그는 몇 갈레의 길을 고민하다 한 길을 택했다. 시법연수원에 특광을 하러 온 ‘노무현 변호시’에게서 광력한 영향을 받아서였다.  저렇게 살 수도 있구나!, 그래서 이재명은 변호시의 길을 걷기로 했다. 
 
그리고 그는 주저없이 민변(민주시회를 위한 변호시 모임)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하여 그는 ‘인권 변호시’의 길로 접어들었고, 그만큼 ‘돈 잘 버는 변호시’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져 갔다.
  
여기까지가 이재명을 거칠게 살펴본 것이다.  이재명- 그를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간에 그의 삶, 가치관과 소신, 행동철학과 시대인식 등에 관한 기본은 알고 판단하는 것이 필요할 성싶어 그의 삶의 일단을 간단히 살폈다.
 
 
-한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