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람이 만든 가짜역사를 쓰는 우리나라 권위있는 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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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봉우권태훈옹 ㅡㅡ

​<<일본놈들한테 괭이(고양이)도 안된다는 소리를 들었던 조선의 지식인>>

17:15

그런데 지금 여기서 조선서 역사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다 내버린 역사, 일본 사람이 맨들어서 다시 다 꺾어서 맨든 4천년 조선사라고 하는 것을,

여 이 총독부적에 맨들었어요. 4천년 조선사라는걸 맨들적에, 청유남명(靑柳南冥)4)이라고, ‘푸를 청(靑)’자하고 ‘버들 유(柳)’자, 청유남명이라는 일본 역사가입니다.

그 녀석이 여기 와가지고, 중추원(中樞院)5)에서 <조선사연구회>이라고 해가지고 있어가지고, 거기서 조선사람으로… 뭐 누구 누구들 있었겠죠, 있기야 있지만은…

최남선[崔南善, 1906~1957]이를 모셔갔습니다. 최남선이를 모셔갔는데, 청유남명이가, 지가(봉우선생님께서) 그때 저 중추원에 구경 갔었어요.

구경 가서 그 얘길 하는걸 듣고, 그러니까 이 친일하는 일본사람, 친일하는 중추원 참의(參議)들은 조선사를 맨들어야지 안맨들으면 안된다고 하는건데,

일본사람이 일본.. 일본놈 앞세고(앞세우고) 조선사람 뒤세(뒤세우고) 맨들은 역산지 훤히 알지 왜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그 찬성을 하고,

거기서도 좀 머리있는 사람들은 반대를 하고 그랬어요.

하는데, 청유남명이가 중추원 수사관(修史官: 역사를 편찬하는 관직)이죠. 수사관으로 있으면서, 여럿이들 말해가지고선 최남선을 모시러 갔어,

모시러 가면서 하는 소리가, “그 사람이 조선의 학자인데 잘 올까 모르겠다.”고,

그래 갔다 오더니, 반대를 하더래요, 못한다고, 않는다고 첫날. 그래 뭐 가서 얘길.. 별 소리 달콤한 소리를 별 소리를 다 했는데도

안듣고 반대해서 못 데리고 왔어요. 거 와서 하는 소리가,

“최남선이 조센노 간치6)인데.. 조선의 간치인데 그 사람이 그렇게 오겠냐?”고.

그 일본 사람도 그 사람을 그렇게 추엇는데(올려세워줌), 고 다음날 다음 다음날 사흘 되던날 가 데리고 왔습니다. 두번째 가서 꾀이니까 승낙을 해가지고 대답을 하고 왔어요.

그니까 그녀석이 청유남명이하고 전중(田中)이 하고, 전중이라는게 저기 저 총독 비서입니다. 그녀석하고 조선말 저.. 통역하는 녀석이, 그래 거기와서 둘이 앉아 얘기하더니

최남선이 왔다니까 하는 소리가 뭐라고 한지 아십니까?

“조센노 간떼또못다마 네꼬7)대모나이”라고, 조선의 간치로 알았는데 괭이(고양이)도 아니라고 그래요, 괭이도 아니라고. 그런 망신이 어디 있습니까?

저기다 데려다 놓고 지금, 모셔다 수사관으로 모셔 앉혀 놓고, 저희놈 두놈이 앉아 하는 이야기가 그러더믄요.

4) 일본 국수주의 국학자, 사학자. 일제하 중추원의 <조선사연구회> 주간으로 활동. 《조선종교사(朝鮮宗敎史)》(1911), 《조선사천년사(朝鮮四千年史)》, 《이조사대전(李朝史大典)》등의 저서가 있슴.
5) 국권피탈의 공로로 일본으로부터 작위를 받거나 친일적 정객, 유력인사를 포섭하여 중추원의 명예직을 주었다. 의장에는 총독부 정무총감(政務總監)이 되고, 부의장(칙임관 대우) 1명,

고문(칙임관 대우) 15명, 찬의(贊議) 20명, 부찬의 35명, 서기관장 1명, 서기관 2명, 통역관, 속전임(屬專任) 각 3명을 두었다. 3·1운동 후 고문·찬의·부찬의를 참의(參議)로 고쳐 65명을 정원으로 하였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6) 간다 다까히라[神田孝平, 1830~1898] 일본 막부 말기의 서양학자. 서양문화를 수입하고 연구하여 일본에 알린 개척자. 특히 난학(蘭學) 즉 네덜란드 헌법을 일본 최초로 번역하여 소개했다.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대석학으로 유명하며, 일본인들은 이 사람을 ‘간치’라 줄여 부른다. 여기서는 조선의 석학이라는 의미로 쓰인듯하다.
7) 일본어로 고양이라는 뜻.

<<일본 사람이 만든 가짜 역사를 그대로 쓰는 우리나라의 권위있는 사학가>>

20:34

그래서 그걸 만든 책이, 그걸 만든 책이 4천년 조선.. 4천년사라는게 꼭대기꺼는 전부 어물어물하고 임진왜란도 일본사람한테 여기서 큰 성공 못한거처럼 하고,

전부 우습게 우습게 맨들었지 그래놓고, 일본놈이 상승(常勝: 역사적으로 일본이 늘 조선을 이김)한 것처럼 되고, 조선이 그저 끄트머리까지 가서 이제 조선이

망할만한 일이 많은 조건이 나니까 일본이 와서 구해주는거 모양으로 그거 어물어물하게 그렇게 맨들었어요. 《조선사 4천년사》라는거 보면 알아요.

그런데 그걸 그대로 조금도 하나도 안빼고 고대로 찍는 사람이 지금도 일본서 사학과에 나온 이박사라고 하는 사람 그 사람이 고거 하나도 안빼놓고 그대로 씁니다.

그래 만나면 자꾸 잔소리들을 하지. 니가(네가) 사학가냐 뭐야, 자꾸 다른 소리를 하지만은 그건 우리들 소리지 그 사람은 사학가로 권위를 하고 제자들이 몽창 사학 배우는

사람들이 그 사람한테 배워나서, 지금은 좀 곤쳐(고쳐)가지마는 전부 조선사라는게 일본사.. 일본 사람이 맨든 가짜 역사 맨든거 그거, 배운 사람들이 전체예요

<<만주가서 우리 조상거 찾아야지 별 도리 없어요.>>

25:50

그래서 지금 고사(古史)를 우리들이 다시 찾자면, 거기 가면서 지명, 땅 지명 뭐라고 지었나 부르는 이름이 있죠. 거기서 암만해도 잊어버리지 않고 그냥 남던거,

요기서래도 어디가면 산에 무슨 신선이 놀던 데라 뭐이가 하던 데라고, 이렇게 전설의 고향 모냥 있지 않습니까? 그게 죽 나와요. 나오는데,

우리가 백두산이지만 백두산 줄거리에 장백산.. 장백산 거기서 시작한거 같애.

장백산 거기서 제일 웅장하게, 본 이 단군시조 나오신 이는 게서(거기서) 웅장하게 해가지고 나라를 맨들었고, 그 큼직한데 거기서 맨들어야지

왜 백두산 꼭대기에서 하셨겠습니까? 맨들으시고,

여러나라 사람(오색인종) 모으기는 바이칼호 중심으로 해서 모았고, 바이칼호.. 물이 있어야 되니까, 거기를 했고.

그 어른이 정치하시던 데는, 역사를 팔라면(알아 보려면) 장춘(長春), 저 만주국 신경(新京: 일제가 장춘에 세웠던 만주국의 수도)했던 장춘

그 근처가 우리 도읍했던 자릴겁니다.

그래서 그 근처에 가서 뒷산을 뒤지면 나옵니다, 틀림없이 나옵니다. 뫼(묘)가 있든지 뭐가 있든지 파면 거기서 나오고, 그 근처로 가서 이리 이렇게 돌아가면

조선사람들 살던데.. 살던데란 그 이름. 여기 이 대전(大田)하면 한밭 그러지 않습니까? 그 대(大)자 써서 그러는데, 여기 우리들.. 우리들을 저녀석들(중국인)이

인제 한, 한 그래요 한. 한은 환족(桓族)이라고. 환이라는 것이 밝다는 소리거든. 단군이란 것도 밝은 임금이라는 자린데.

중국 녀석들이 이제 그 환하다는 소릴 쓰기 싫으니까 ‘땀 한(汗)’자를 씁니다. 음은 같아요, 환. 땀한자를 쓰는데, 소한첩, 대한첩, 한뭐씨 이렇게 하는 첩?이 그뜩합니다.

예전 조선사람들 그 한족들 살던데 말이여. 지도에 다 봐요, 거기가면 예전 우리조상들 살던 땅이름이 거가 자꾸 나오지.

오경(五京) 있을 때는 그담에 뭣이 저 이 발해적에 오경이 있었으니까 오경이, 그건 그 다음에 지금 한 천여년 전에 있던 거니까 말할거 없고. 만주에 가서 있고,

지금 산동성으로 직예성(直隸成: 하북성)으로 이쪽으로 하남성까정 저 뭣이가 발해가 차지하고 있었으니까. 그건 나중 일이고, 그 전에 우리 조상들이 하시던 데는,

그 꼭대기서 몽고 한쪽으로 서백리아(시베리아)하고 만주하고 이렇게 차지하고 있었어요.

29:02

그러니까 이제 담에 우리 백두산족으로 이리 내려온거는 담에 차차 차츰 내려온거고, 편하게 내려온거고. 여기 백두산에도 조선이 지금 요렇게 적진 않던거예요.

땅이 좀 육지가 좀 넓던건데. 일본 빠져나가고, 뭣하고 뭣하고 할때 자꾸 빠졌지, 자꾸 가라앉아서, 여 칠산(七山)바다 – 군산 앞바다 – 여기서 이 뭡니까 인천서 군산나가는 칠산바다에,

칠산바다에 고을 일곱이 들어갔다는 아닙니까? 고을 일곱이 물속으로 들어가서 바다가 거긴 깊지가 않고 얕아요. 그것이 인제 그 땅이 들어간거, 사람 살던 데가 물로 들어간 거예요.

그러고 인제 제일 가깝게는 아산만 터졌다는 것이.. 아산만 터진 것은 임진왜란때 조금 전입니다.

임진왜란때 조금 전에,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 1517~1578] 사실적에 그때 거기 터져 나갔어요. 그거 얼마 안알아서, 거기서 그거 터져나간건 한 골 조금 못되게 터져나갔어요.

한 골, 그 면으로 한 다섯면이나 여섯면이나 고게 물속으로 들어갔어요.

여기도 그때도 인제 화산이 조금 있으니까 그랬던 모양이죠. 지금은 식화산(熄火山: 휴화산)이니까 그러지만, 저.. 아주 화산이 없진 않았어요 거기도.

조선 당장 국내사도 모르며, 저 만주까정 간다는건 조금 힘드는 일이지마는, 지금은 남북이 맥혀가지고 북쪽으로 가서 조사를 못하니까, 저리 건너가서

​만주가서 우리 조상거 찾아야지 별 도리 없어요. 찾으면 뭣합니까? 아무것도 몰르고 찾으면 소용없습니다. 그러니까 머리가 좋아가지고 찾아가지고 근거를 찾아라 이거죠.
근거를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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